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의 피해자 행세 (문단 편집) === 전후 환경의 차이 === 일본과 독일은 2차 대전에서 패전한 추축국이라는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전후 양국이 처한 상황이 사뭇 달랐다. 독일의 경우 미영불소 4개국에 의해 국토가 분할 점령되었으며 결국 미영불 3개국 점령지는 서독, 소련 점령지의 반쪽은 동독으로 분리 독립했다. 이 과정에서 소련 점령지의 나머지 반쪽은 [[오데르-나이세 선]]을 경계로 소련과 공산 폴란드에 할양되었다. 또한 프랑스는 점령지의 일부를 [[자르 보호령]]이라는 이름으로 떼내 독일로부터 분리하려 하였고 이를 후일 서독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연합국은 수도 베를린을 분할 점령하였고 미영불 3개국은 1990년 통일 시점까지 명목적인 관할권을 서독에 돌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서독은 통일 시점에도 승인 조건으로 이들 국가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어야 했다. 일례로 프랑스의 요구로 마르크를 폐기하고 유럽 공용화폐를 채택하겠다고 합의했으며 소련의 조건으로 소련에 대한 경제 원조 및 동부 영토의 포기를 승인하였다. 이렇듯 승전국 4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독일에 끊임없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었고 주권 완전 회복을 위해 동서독은 이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반면 일본은 미국에 일방 점령되었기 때문에 [[GHQ]]에 의해 미국 입맛에 맞는 개혁만이 이루어졌다. 미국은 승전국 4개국 중 패전국에 가장 관대한 나라였고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묵인 하에 다른 주변국과의 관계 회복 없이도 주권을 온전히 되찾을 수 있었다. 일제의 최대 피해국인 중국마저 전후 다시 내전의 늪에 빠져 일본에 자국의 입장을 제대로 관철할 수 없었으며 독립과 동시에 분단된 신생국가 한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일본군의 군화에 짓밟힌 동남아 역시 종전 직후 곧바로 서구 종주국과 독립전쟁을 치러야 했고 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처분, 냉전, 식민지 독립, 국토 재건, 경제 위기 등 여러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일본의 처분을 오로지 미국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련은 냉전의 영향으로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차지하는 것 외에 전후 일본에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2차 대전 직후 일본에 대한 주변국의 요구사항이 들어지지 않았고 막후에서 일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은 대소 냉전에 온 신경이 집중된지라 과거사 청산에 관심이 소홀했다. 결국 전후 일본에 대한 피해국들의 영향력 부재는 후에 일본이 우익 정권으로 회귀해 과거사를 미화할 여지를 남기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